Kleine Johannisstrasse에서 다시 Nikolaikirche가 있는 남쪽으로 내려와 동쪽에 있는 Laeiszhof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1897-1898년에 Bernhard Hanssen, Wilhelm Emil Meerwein 그리고 Martin Haller가 설계한 이 건물 Laeiszhof는 Hamburg의 유명한 상인귀족가문인 Laeisz가문의 보험회사 빌딩인데, 원래 이 가문의 시조인 Ferdinand Laeisz는 19세기초에 Hamburg에서 실크햇 모자를 만들어팔던 수공업자로서, 귀족신분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가 만든 실크햇 모자가 1825년 브라질, 베네주엘라, 쿠바, 칠레, 페루 등지에서 인기를 얻자, 그는 실크햇 모자 수출만으로 떼돈을 벌었고, 거기서 안주할 수 없었던 Ferdinand는 원양상선을 타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고자 커다란 배를 한 척 만들어서 이름을 "Carl"이라 붙이고 본격적인 해운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의 사업은 때마침 불어닥친 중국무역붐에 힘입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아들인 Carl Laeisz의 대에 이르러서는 Ballin가문, Sloman가문과 함께 Hamburg의 3대 해운업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1897년 손자인 Carl Ferdinand Laeisz의 대에 이르러서는 보험업에까지 손을 뻗쳤고, 위 사진에 보는 바와 같은 보험회사빌딩도 세워서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황제로부터 공작의 작위를 받고, Hamburger Musikhalle를 Hamburg시민들에게 바친 것도 이때이다. 비록 3대 회장인 Carl Ferdinand Laeisz와 그의 동생 Erich Ferdinand Laeisz가 요절해서 가문의 대가 끊기고, 20세기초에는 전세계적으로 해운업계 불황이 몰려왔지만, Laeisz공작의 외손들은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아프리카에 바나나농장을 세우고 그 바나나를 유럽 전역에 수입해 떼돈을 벌어 사세를 오히려 더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모든 상선이 연합군에게 징발되었지만, 칠레초석수입으로 위기를 넘기며 Hamburg 최고의 해운회사로 부상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모든 상선과 사업체가 소련군에 압류당했지만, 곧 유럽최대의 냉동상선대를 새로 구축함으로써 파산의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1982년에는 사상최대의 해운업불황으로 거의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유조선 Pharos의 건조와 아프리카 새우수입으로 다시 일어섰으며, 오늘날엔 대형 콘테이너선만 해도 40척을 보유한 대규모 해상제국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F. Laeisz상사의 소유 및 경영권은 Laeisz공작의 외손들 손을 완전히 떠났으며, 동업자였던 Schuees가문의 손에 완전히 넘어가버린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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